처음 읽었을 땐, 단지 전근대적인 인물의 미성숙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기에 오가이가 무희를 썼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를 통해 많은 당대의 청년들이 공감을 표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주인공을 광인, 남자 자신은 최악의 사내라는 극적 설정엔 어딘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소설의 주된 역할 중 하나가 ‘위로’이기에, 오가이 작가 본인이 극적 구조의 소설을 통해 ‘위로’를 느끼려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모리 오가이의 저작 의도에 초점을 맞추며 다시 한 번 읽어보고 감상을 남기게 되었다.
1. 엘리제에 대한 속죄의 마음 ㄱ. 실제 엘리제에 대한 사랑 -작중 엘리스로 투영- [모리 오가이 ‘망상’ 중 일부]
자신은 이 자연과학을 키울 분위기가 있는 편리한 나라를 뒤로 하고 꿈의 고향으로 떠났다. 그것은 물론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었지만,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 때문에 떠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소망의 저울도 한쪽의 편의 접시에 편리한 나라를 올리고 또 한쪽 편의 접시에 꿈의 고향을 올렸을 때 편리한 접시에 매단 실을 살며시 끄는 힘, 상냥한 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꿈쪽으로 향했던 것이다.
▷ 독일 쪽으로 ‘실을 살며시 끄는 상냥한 손’ 은 엘리제를 의미한다. 이 표현으로부터 그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느낄 수 있음과 동시에 그녀를 무정히 돌려보낸 회한도 느낄 수 있다.
[모리 오가이 독일 유학 당시 직속상관 이었던 이시구로 타다나오의 1888년 7월의 일기]
‘배 속에서 오가이와 그의 애인에 관한 얘기를 하고서는 창백해져서 서로 말 없이 선잠에 들어갔다’ 그리고 일기의 다른 부분에 이시구로는 이렇게 밝힌다. ‘나는 돈으로 애인 문제를 해결하고 귀국하고 있었지만, 오가이의 엘리제와의 결혼 의지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 엘리제에 대한 또 다른 사랑의 증거다. 창백해졌다거나 결혼이야기가 나올 정도라면, 남자라면 누구나 사랑했구나 라고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실제 모리 오가이는 엘리제를 떠나보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아버지는 손님과 문예담으로 밤을 지새기도 하고 아내는 벌써 잠자리에 들어갈 무렵 한 손님이 난로에 탄을 넣으러 온 하녀에게 시각을 물었던 바, 졸린 듯한 소리로 ‘벌써 12시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아버지가(오가이) ‘12시라면 12시로 충분하다. 벌써가 뭐냐’ 라고 야단을 쳤다고 한다. ▷ 오가이는 엘리제가 돌아간 후 약 1개월 뒤인 1889년 11월 22일에 해군 중장이자, 남작인 아카마츠 노리요시의 장녀 도시코와 약혼하고 다음 해 결혼한다. 그의 귀국 전부터 친척 니시 아마네를 통해 아카마츠 가문과의 혼인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카마츠 가문과의 결혼은 육군 군의였던 오가이에 있어서는 행운이었고 입신출세의 장래가 보장되는 결혼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가이는 장남 오토가 태어났음에도 부인 도시코와 관계가 좋지 못하였고 결국 이혼이라는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사랑했던 엘리제에 대한 그리움과 그녀를 버린 죄책감, 그리고 입신출세에만 사로잡혀 있던 자신에 대한 회의감등이 모리 오가이에게 엄습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런 불안정한 심리 상태 속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를 승화 시킨 작품이 무희가 아니었을까.